삼한시대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弁韓)의 12개 부족 국가 중 군미국(軍彌國) 또는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가야시대

삼한시대를 거쳐 가야연합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현 진주 관할인 고령(古寧)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시대

690년(신문왕 10)에 전야산군의 속현이었던 내포현이 삼동면 지역에 최초로 설치된 행정구역이라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1538년 왜구의 침략으로 진주관아의 대야천 부곡으로 임시로 옮겼으나 1404년(조선 태종 4)에 남해현과 함께 다시 복현하였다.

조선시대

조선 태종 때 금산하려에 6개동으로 조직되었고, 하위 행정구역 체제로 진행되던 중 1786년 이전(『진주진관지』)에 삼동면이 설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18년 9개동으로 행정관할을 개청하여 삼동면으로 호칭되었다.

현대

1910년 10월 1일 면으로 명칭하고 1913년 2월 물건리에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1918년 봉화리(삼화마을)로 이전, 1932년 6월에 현 위치인 지족리에 사무실을 두었다.
1982년까지 남해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면적이 가장 넓었으나,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17호에 의해 난음리 4개마을인 난음리, 난양리, 장전리, 문현리가 이동면에 편입되었고, 1986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11874호에 의해 삼동면 미조출장소가 미조면 으로 승격하면서 미조출장소 관할 미조리 5개 마을, 송정리 8개 마을이 삼동면에서 분할되었다.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담당부서
삼동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 055-860-8151)
최종수정일
2022-06-20 14:19:2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