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상주면에는 현재까지 선사유적이나 유물이 채집되지 않고 있어 선사인들이 정착한 생활주거지역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나, 기원전인 철기시대 유적으로는 서불과차(徐巿過此)로 기록되고 있다.

삼국시대

삼국시대 남해는 신라 신문왕 때 나포현과 평산현을 두었는데 난포현은 현 이동면 난음리가 소재지였으며 상주는 이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이동면 관할구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임촌마을과 금포마을에서 채집되도 있다. 영산인 금산에 신라 명승(名僧)이 사찰을 세우고 기도하면서 불교를 널리 전파하는데 불심(佛心)을 얻고자 금산 아래로 찾아 들어 이민(移民)들이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고려 성종 2년(983) 2월에 중앙관서개조와 더불어 지방행정기구를 개편하여 12수제(收制)를 단행하고 상주관(常住官)인 목사(牧使)를 각각 파견하여 소관주군 현내의 제향직을 감독케 하였으며, 성종14년 개편에서 군제가 폐지되고 10도 4도호부 128주 449현 7진으로 체계화되었으며 남해 호칭은 산남도 남해현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상주포성은 연산 3년(1497) 3월 목책이 설치되었다가 중종 16년(1522)에 석축으로 축성되었으며 영조 27년(1751) 폐진됨에 따라 상주포성은 254년동안 상주 뿐 아니라 남해를 지켰던 보성(堡城)이었다.

현대

1942년부터는 상주리에 이동면 상주출장소를 두고 상주리 및 양아리를 관할하였다. 그 후 1957년에 출장소가 폐지되고 1968년 12월 31에는 현재의 상주면 전역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건설부 공고 제164호) 상주리•양아리는 이동면에 속하여 오다가 1790년 상주출장소를 설치하고, 1986년 4월 1일자로 상주면으로 승격되었다. (대통령령 제118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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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상주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101)
최종수정일
2022-06-20 14: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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